끄적거림

우리는 모두 소녀다.

DESIGN IS PLAY 2023. 4. 1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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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소녀다.

 

새로운 단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다섯명의 그녀들과 같이 일하게 되었다.

일의 특성상 같이 일한다기 보다는 담당 구역이 나뉘어져 있어 사실 인사만 주고 받으면 그만인 사이이다.

 

사람을 사귀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면 굳이 개인사를 먼저 묻지 않는다.

보는 시각에 따라 너무 무관심해 보일수도 있긴 한데 사실 그런 의도보다는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저런 경험을 할 수록,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수록 이런 나만의 고집은 더욱 더 확고히 굳혀졌는데 아무렇지 않는 소소한 개인사에 대한 질문들이 누군가에게는 상처로 다가갈 수 있기에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낼 때까지 기다리는 성향이 있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나의 의견을 첨부하지 않는다. 의견보다는 왜 그런지 이유를 묻는 것으로 끝맺음을 하려고 노력하는편이다.

 

이런 나의 주관으로 인해 나보다는 나이가 많은 그녀들과 약간의 삐걱거림은 어쩌면 예상되어있던 수순일수도 있겠다.

그녀들이 살아온 세월은 단체행동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을 것이고, 관심의 표현 방식이 서로 다른 온도를 지녔기에 나 또한 일에 대한 적응보다는 사람에 대한 적응 시간이 더 길어졌다.

 

처음 만난 그녀들은 나에 대한 관심을 나의 의견을 묻지 않는 잔소리(?)로 표현 했고, 나는 서로 존중하는 관계로 발전되길 바랬다. 각자의 구역만 관리하면 되는 일이기에 나는 이런 표현방식이 마음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지 한달이 조금 넘은 지금은 관심의 표현에 대한 적정 온도가 서로에게 알맞게 맞춰져 서로의 간식을 챙기기도 하고, 일에 대한 마무리도 서로를 기다렸다가 헤어짐을 같이 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런 그녀들의 나이대를 오늘 처음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는데 70대에서 80대 이상이었다.

 

오늘 그녀들의 화제거리는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칭찬을 잔뜩 들었지만 안하니만 못한 칭찬에 대한 얘기다.

 

이 일과 관련된 어느 한분이 그녀들에게 80이 넘으셨는데도 허리도 꽃꽃하고 밖에서 이렇게 활동도 하시고, 나이가 들어보지 않는다는 등등 칭찬을 한바탕 늘어놓았다고 한다.

 

이 사건이 그녀들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었는데 내가 생각해도 쓸데없는, 그러니까 요즘 세태를 잘 모르는 센스없는 안하니만 못한 칭찬이다.

 

그녀들은 젊은 사람들은 70이 넘으면 아무것도 못하고 밖에도 못 돌아다니는 줄 안다는 것이다. 아들뻘이라 젊으니까 아직 이해를 못한다고 했다. 이 말에 칭찬 아닌 칭찬을 듣고 기분 나쁜 표정조차 짓지 못했을 그녀들을 생각하니 내가 다 화가 났다.

 

"기분 나쁜데요? 기분 나쁜거는 나쁜거지! 그 말을 한 사람이 20대는 아닐꺼 아니에요? 나이가 있는 편인데 뭘 이해를 못해요? " (예상컨데 그 말을 한사람은 최소 40대 이상 이였을 것이다.)

 

이렇게라도 말하고 나니 내가 다 속이 후련했다.

그리고나서 그녀들과 눈을 맟추고 보니 그녀들의 눈동자는 슬프기도 했고, 어리기도 했으며, 멈추지 못한 세월의 안타까움까지 담아내고 있었다.

 

어느 인생의 구간을 살아내고 있던지 간에 내가 인정했을 때의 나의 모습이 진정한 '나' 자신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녀들이 그렇게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길 바랬다.

그래야 나도 그녀들을 보며 나이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잘 따라갈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나는 그녀들의 인생을 응원하기로 마음 먹었다.

우리는 모두 소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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